인생

"무주상보시의 삶: 나눔과 헌신으로 빛난 어른,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

아르센뱅거 2025. 4. 10. 22:37

김장하 선생(1944년생)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 동안 지역 사회에 헌신한 인물로, 그의 삶은 기부와 봉사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교육, 문화, 복지 등에 환원하며 조용히 선행을 실천해왔습니다. 그의 삶과 철학은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이타주의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여겨집니다.

출처:mbc다큐로

초기 생애와 한약업

김장하 선생은 194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삼천포의 한약방에서 일하며 공부해 1962년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1973년 진주로 이주해 약 50년간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신뢰받는 한약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돈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명신고등학교 설립과 국가 기부

김장하 선생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명신고등학교 설립입니다. 그는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하고 이듬해 명신고등학교를 개교했습니다. 학교 운영 과정에서 친인척 채용 금지, 금전 거래 없는 교사 임용, 권력에 굴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원칙을 세우며 공정한 교육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후 1991년, 학교를 국가에 조건 없이 기부했는데, 당시 자산 가치는 약 100억 원으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00억 원에 달합니다.

장학사업과 문화예술 후원

김장하 선생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약 1,000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며 '김장하 키즈'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또한 진주오광대 복원, 극단 '현장'과 같은 문화예술 단체 후원, 지역 문화를 기록한 책 발간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 문화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형평운동과 시민사회 활동

그는 백정 신분 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관련 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하며 형평운동 100주년 기념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또한 경상국립대 후원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진주지부 이사장 등 여러 직책을 맡아 지역사회와 인권 향상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겸손과 무주상보시의 삶

김장하 선생은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지 않고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인터뷰나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조용히 선행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철학은 "우리 사회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대중적 관심

2023년 그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가 개봉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유산과 영향

김장하 선생의 삶은 단순히 재산 기부를 넘어 사회적 책임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을 통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봉사의 의미를 강조했으며, 그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